한 장의 음반 표지가 한 편의 미술사 강의를 품고 있을 때가 있다. 음악을 듣기 전 표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한 작품과 또 다른 작품이 만나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 소개할 음반은 영국 켈틱 펑크 밴드 포그스(The Pogues)가 1985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Rum Sodomy & The Lash》다. 앨범 커버는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1824)의 걸작 《메두사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이를 그린 인물은 초상화로 잘 알려진 화가 피터 멘님(Peter Mennim)이다.

 

먼저 이 앨범 커버의 원전이 된 그림을 살펴보자.

 

1816년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가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좌초했다. 배에는 약 400명이 타고 있었지만 모든 사람을 태운 만큼 구명정이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군인과 선원 등 147명이 급조한 뗏목에 올라 바다에 남겨졌다. 극한의 표류 과정에서 살인과 굶주림, 식인까지 이어졌으며 13일 뒤 구조됐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불과 15명이었다. 

 

제리코는 이 충격적인 실제 사건을 거대한 캔버스 위에 옮겼다.

테오도르 제리코(Teodore Gericault) 작품 “메두사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

그가 선택한 장면은 난파 자체도, 죽음의 순간도 아니다. 지평선 멀리 구조선이 나타났음을 발견한 사람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구조를 요청하는 순간이다.

 

그림 아래쪽에는 죽음이 있다. 널브러진 시신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뗏목을 뒤덮는다. 그러나 시선은 점차 위쪽으로 올라간다. 사람들이 서로를 붙들고 일어서면서 화면은 하나의 거대한 상승 운동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정점에서 한 흑인 청년이 천 조각을 흔들며 먼바다의 배를 향해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낸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올라가는 피라미드다.

 

화면에는 두 개의 삼각형 구조가 맞물려 있다. 한쪽은 죽음과 절망의 소용돌이를, 다른 한쪽은 구조선을 향한 인간의 마지막 희망을 보여준다. 특히 화면 오른쪽 높은 곳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흑인 인물을 중심에 세운 것은 당시 유럽 사회의 시각에서 매우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메두사의 뗏목》이 중요한 이유는 비극적인 사건을 재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리코는 역사적 영웅이나 신화 속 인물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대신 당대 사회가 감추고 싶어 했던 현실을 회화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고통받는 인간의 육체와 공포, 절망, 그리고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거대한 화면에 그대로 드러냈다.

 

엄격한 질서와 이상적 아름다움을 중시하던 신고전주의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감정과 극적인 현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메두사의 뗏목》은 낭만주의 미술의 문을 연 상징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제리코는 이 작품을 완성한 뒤 오래 살지 못했고 1824년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60여 년 뒤 이 비극적인 명화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다시 등장한다.

 

바로 록 음반의 표지다.

 

피터 멘님은 제리코의 그림 속 인물들에게 포그스 멤버들의 얼굴을 집어넣었다. 처절한 난파 장면과 밴드 멤버들의 얼굴이 결합하면서 원작이 가진 비극성과 포그스 특유의 거칠고 반항적인 이미지 사이에 묘한 긴장과 유머가 만들어진다.

 

단순히 유명 그림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난파선 위에서 술과 죽음, 혼란과 생존이 뒤엉킨 제리코의 세계는 포그스의 음악이 가진 정서와 이상할 만큼 잘 어울린다. 아름답지만 거칠고, 슬프면서도 흥겹고,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 이 앨범 표지는 그런 포그스의 정체성을 한 장면 안에 압축한다.

피터 멘님(Peter Mennim)  작품                        구글 AI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초상화

커버를 그린 피터 멘님은 영국 출신 화가로 케임브리지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특히 인물과 초상화 작업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대학과 기관의 초상화 및 단체 초상 작업을 남겼다. 

피터 멘님(Peter Mennim) 작품영국 린대주교 조나단 메이릭(Jonathan Meyrick) 초상화

하사비스(Demis Hassabis), 조나단 메이릭(Jonathan Meyrick) 등을 모델로 한 그의 초상 작품들도 소개돼 있다. 

피터 멘님(Peter Mennim)  작품 데릭(Derek) 초상화

 이제 음악으로 돌아가 보자.

 

포그스는 1982년 런던 킹스크로스에서 셰인 맥고완(Shane MacGowan), 스파이더 스테이시(Spider Stacy), 젬 파이너(Jem Finer)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이후 제임스 펀리(James Fearnley), 케이트 오리어던(Cait O'Riordan) 등이 합류하면서 밴드의 초기 진용이 만들어졌다.

 

포그스가 만들어낸 음악은 독특했다.

 

아일랜드 전통 음악의 선율과 악기에 1970년대 후반 펑크 록의 거친 에너지를 결합했다. 술집에서 모두가 함께 부를 것 같은 민요와 도시의 밑바닥을 질주하는 펑크의 속도가 한 곡 안에서 충돌한다.

 

그 중심에는 셰인 맥고완이 있었다.

 

그의 노래는 세련된 아름다움보다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삶에 가까웠다. 이민자와 노동자, 술꾼과 떠돌이, 사랑에 실패한 사람과 거리의 패배자들이 그의 노래 속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그 음악은 단순히 우울하지 않았다. 슬픔을 노래하면서 춤추고, 절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술잔을 들어 올리는 기묘한 생명력이 있었다.

 

그래서 《메두사의 뗏목》은 포그스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그림인지 모른다.

 

바다 한가운데 버려진 사람들.

이미 죽어가는 사람들.

그래도 마지막까지 일어나 멀리 있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

그 모습은 어쩌면 포그스가 노래했던 사람들과 닮아 있다.

그룹  포그스(The Pogues)   1985년  앨범  “Rum Sodomy & The Lash”

1985년에 발표된 《Rum Sodomy & The Lash》는 포그스의 두 번째 앨범으로, 밴드 초기의 거칠고 활달한 에너지를 잘 보여주는 음반이다. 앨범 커버에서는 《메두사의 뗏목》 속 인물들의 얼굴에 포그스 멤버들이 익살스럽게 등장한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와 20세기 런던의 펑크가 한 화면에서 만난 셈이다.

 

미술사는 때때로 미술관 밖에서 더 재미있게 살아난다.

 

한때 프랑스 왕정의 무능과 인간의 비극을 고발했던 그림이 160여 년 뒤 영국 펑크 밴드의 음반 표지가 됐다. 제리코가 그렸던 뗏목 위의 인간들은 피터 멘님의 손을 거쳐 포그스라는 또 다른 시대의 얼굴을 얻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손을 흔든다.

그리고 때로는 노래한다.

《Rum Sodomy & The Lash》의 표지가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한 뗏목 위에서도 끝내 희망을 향해 몸을 일으키는 인간.

그 위에 포그스의 음악이 흐른다.

 

글 ㅣ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음반 개요

음반명: 《Rum Sodomy & The Lash》
아티스트: The Pogues
발매연도: 1985년
음반 구분: 정규 2집
장르: 켈틱 펑크(Celtic Punk), 포크 펑크(Folk Punk)
밴드 결성: 1982년 영국 런던
주요 멤버: Shane MacGowan, Spider Stacy, Jem Finer, James Fearnley, Cait O'Riordan 등
특징: 아일랜드 전통음악의 선율과 악기에 펑크 록의 거칠고 강렬한 에너지를 결합한 포그스 초기 대표작
앨범 커버: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을 패러디한 피터 멘님(Peter Mennim)의 작품
커버 특징: 원작 속 인물들의 얼굴 일부를 포그스 멤버들의 얼굴로 바꿔 비극적인 고전 회화에 밴드 특유의 풍자와 위트를 더했다. (66)이한장의음반-포그스
감상곡: 〈London Girl〉, 〈The Sick Bed of Cuchula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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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기자 dream-kaz@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