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숫자가 만들어지는 구조다
기업을 만나 기술과 특허, 사업을 들여다보다 보면 많은 숫자를 접하게 된다. 매출액, 영업이익, 연구개발비, 특허 수, 정부과제 수, 신제품 매출 비중, 수주액, 기업가치까지 기업은 수많은 숫자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다. 숫자는 분명 중요하다. 숫자 없이 기업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숫자가 기업의 경영 그 자체는 아니다. 숫자는 기업에서 일어난 결과를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한 하나의 그림에 가깝다. 따라서 경영자가 보아야 할 것은 숫자 하나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가 왜 만들어졌으며 다른 숫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 놓고 그것이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이미지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켰다. 경영의 숫자도 마찬가지다. 매출 100억 원은 기업이 아니다. 특허 30건도 기술력이 아니며, 연구개발비 10억 원을 투자했다는 사실 자체가 혁신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 숫자들은 기업에서 벌어진 활동의 일부를 보여주는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그림을 실제 기업의 모습과 혼동한다. 특허가 늘어나면 기술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정부 R&D 과제를 많이 수행하면 연구역량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며, 매출이 증가하면 사업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개별 숫자만으로는 기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기술기업에서는 이러한 착시가 더욱 쉽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특허가 20건에서 40건으로 늘었다고 하자. 숫자만 보면 IP 경쟁력이 두 배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특허들이 회사의 핵심 제품을 보호하고 있는지, 경쟁기업의 진입을 차단할 수 있는지, 후속 R&D의 방향을 만들고 있는지, 고객이 원하는 차별성을 담고 있는지, 투자자가 평가할 만한 기술자산인지까지 살펴보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반대로 특허 수는 많지 않더라도 핵심 기술과 제품, 시장을 정확하게 연결하는 몇 개의 강한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라면 실제 사업경쟁력은 더 높을 수 있다. 그래서 특허의 숫자를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특허와 기술과 사업 사이의 관계를 읽는 일이다.
R&D도 같다. 연구개발비가 증가했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기술경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개발비가 투입되었는지, 그 결과 어떤 기술이 만들어졌는지, 그 기술 가운데 무엇을 특허로 확보했는지, 확보된 특허가 제품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 제품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었으며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졌는지를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R&D에 얼마를 투자했는가”가 아니라 “그 투자가 어떤 기술자산을 만들었고, 그 기술자산이 기업의 경쟁우위와 사업성과로 어떻게 전환되고 있는가”이다.
필자가 말하는 기술경영 오케스트레이션은 바로 이 관계를 관리하는 경영이다. 기술, 특허, 연구개발, 제품, 고객, 시장, 투자, 매출은 각기 별개의 업무처럼 보이지만 실제 기업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기술이 시장의 문제와 연결되지 않으면 연구로 끝나고, 기술이 특허와 연결되지 않으면 경쟁기업이 쉽게 모방할 수 있으며, 특허가 제품과 연결되지 않으면 비용으로 남는다. 제품이 고객가치와 연결되지 않으면 매출이 만들어지지 않고, 매출이 수익구조와 연결되지 않으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각의 악기가 훌륭한 소리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악기들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기업의 경영자는 개별 KPI를 관리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특허 수가 늘었는가를 보기 전에 그 특허가 핵심 기술을 얼마나 보호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연구개발과제가 늘었는지를 보기 전에 그 연구결과가 회사의 제품 로드맵과 연결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매출이 증가했다면 어떤 기술과 제품에서 매출이 증가했는지를 살펴야 하고, 이익이 증가했다면 그것이 일시적인 비용절감 때문인지 기술적 차별화에 의한 가격경쟁력과 시장지배력에서 비롯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숫자의 결과를 보는 경영에서 숫자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보는 경영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에는 숫자와 숫자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경영지도가 필요하다. 예컨대 시장 문제 → 기술개발 → 핵심기술 → 특허자산 → 제품 차별화 → 고객가치 → 매출 → 이익 → 재투자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흐름을 그려 보면 기업 내부에서 어디가 끊어져 있는지가 보인다. 기술은 많은데 시장으로 연결되지 않는 기업이 있고, 특허는 많은데 제품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기업이 있으며, 좋은 제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업화 역량이 부족해 매출로 전환하지 못하는 기업도 있다. 기업의 진짜 문제는 어느 숫자가 낮은가보다 이 가치사슬의 어느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는가에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중소기업에는 이러한 관점이 중요하다. 대기업과 달리 사람과 자금, 기술개발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많이 할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과 무엇을 연결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하나의 R&D가 하나의 기술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기술이 특허가 되고, 특허가 제품의 경쟁력이 되고, 제품의 경쟁력이 고객 선택의 이유가 되고, 그것이 다시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져 다음 기술개발의 자원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보유한 자원의 절대적인 크기보다 제한된 자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에서 만들어진다.
아이피허브가 기술경영 오케스트레이션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기술을 찾고, 필요한 기술이 없으면 설계하고, 기업이 가진 기술을 더 강하게 만들며, 그 결과를 특허와 IP로 자산화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자산이 실제 제품과 사업에 사용되고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구조까지 보아야 한다. 특허의 목적은 특허증을 한 장 더 만드는 데 있지 않고, R&D의 목적도 정부과제를 하나 더 수행하는 데 있지 않다. 기술과 특허, 제품과 시장, 매출과 이익이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기술경영의 목적이어야 한다.
경영자는 숫자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숫자에 매몰되어서도 안 된다. 숫자는 기업이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흔적이며 현재의 모습을 압축해 보여주는 중요한 경영 언어다. 다만 그 언어를 제대로 읽으려면 숫자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숫자가 만들어지는 원인과 숫자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앞으로 기업을 어디로 이끌 것인지를 읽어야 한다. 좋은 경영자는 숫자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숫자 뒤에 있는 연결구조를 읽는 사람이다. 그리고 좋은 기술경영은 그 연결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일이다.
중소기업 중흥 역시 단순히 특허 수, R&D 예산, 지원사업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 안에 흩어져 있는 기술과 사람, 지식과 특허, 제품과 시장을 하나의 성장구조로 연결할 때 비로소 기업의 잠재력이 사업성과로 전환된다. 이제 우리는 “숫자가 얼마나 좋아졌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어야 한다. 그 숫자를 만들어낸 기업의 구조는 정말 더 강해졌는가. 바로 그 질문에서 기술경영 오케스트레이션은 시작된다.
이병돈의 기술경영 한마디
기술경영은 좋은 숫자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기술·특허·제품·시장·이익이 서로 연결되어 좋은 숫자가 계속 만들어지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글 ㅣ 이병돈 아이피허브 대표/기술경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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