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 한 점이 음반의 얼굴이 되고, 그 음반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한 시대의 음악과 미술이 함께 살아난다. 음반 커버를 보는 즐거움은 단순히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 있지 않다.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시대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음악이 태어난 풍경까지 만나게 된다.

 

이번에 소개하는 한 장의 음반은 1970년대 초 활동한 미국 컨트리 록 그룹 에그스 오버 이지(Eggs Over Easy)의 1972년 앨범 『Good ’n’ Cheap』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앨범 커버다.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Nighthawks〉, 우리말로 흔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로 불리는 1942년 작품을 패러디했다.

 

앨범 커버만 바라보고 있어도 어딘가 익숙하다. 밤늦은 시간, 불이 환하게 켜진 식당과 그 안에 자리 잡은 사람들. 그러나 원작의 쓸쓸하고 고독한 분위기와 달리, 이 음반은 제목부터 장난기가 넘친다. 그룹 이름은 ‘계란은 반숙으로’라는 식당 주문 표현에서 따온 Eggs Over Easy, 앨범 제목은 말 그대로 ‘좋고 싼 것(Good ’n’ Cheap)’이다.

미국 현대도시의 고독을 그린 호퍼의 명작과 소박하고 거친 컨트리 록 밴드의 음악이 한 장의 음반에서 만난 셈이다. 

도시의 고독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작가다. 영국 현대미술에서 데이비드 호크니가 대중적으로 널리 언급된다면, 미국 미술에서는 에드워드 호퍼가 그만큼 친숙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도시의 거리와 건물, 식당, 호텔, 기차, 방 안의 사람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풍경은 이상하게 낯설다. 너무나 익숙한 장소인데도 인물들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있고, 밝은 빛 속에서도 고독이 짙게 배어난다.

 

희미한 음영과 평면적인 화면, 정지된 듯한 건축물과 인물의 모습은 미국적인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드러낸다. 호퍼의 작품은 산업화와 제1차 세계대전, 경제대공황을 거쳐온 미국 사회의 정서를 담았으며, 그는 미국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작품 세계는 이후 1960~70년대 팝아트와 신사실주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도 호퍼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2023년 4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국 최초의 에드워드 호퍼 전시가 열렸는데,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Gas〉와 〈Nighthawks〉가 출품되지 않았음에도 약 33만 명이 전시장을 찾았다. 세월이 지나도 그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가장 많이 패러디된 밤의 식당 

호퍼의 작품 가운데서도 1942년작 〈Nighthawks〉는 특별하다.

 

밤의 도시 한편에 자리한 식당.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밝은 실내가 보이고, 그 안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다. 인물들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완전히 다가가지 못한 듯하다. 바깥 거리는 텅 비어 있고, 식당의 밝은 조명은 오히려 주변의 어둠을 더욱 깊게 만든다.

 

그 한 장면은 현대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에드워드 호퍼 1942년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그래서일까. 〈Nighthawks〉는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광고와 영화, 만화, 대중문화는 물론 수많은 음반 디자인에서도 반복해 패러디됐다. 이번 『Good ’n’ Cheap』의 커버 역시 바로 이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앨범 커버를 만든 사람은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조 가넷(Joe Garnett)이다. 그는 호퍼의 원작을 그대로 복제하는 대신, 밴드의 유머와 음악적 분위기를 담아 새로운 장면으로 변화시켰다. 호퍼의 회화적 이미지가 1970년대 미국 록 음악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계란은 반숙으로’라는 이름의 밴드 

에그스 오버 이지의 이름부터 재미있다.

 

Eggs Over Easy는 식당에서 달걀을 주문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우리말로 조금 재미있게 옮긴다면 ‘계란반숙’쯤 된다. ‘계란은 한쪽 면을 익히고 뒤집어 살짝 익혀주세요’라는 의미를 가진 일상적인 음식 주문법을 아예 그룹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다.

앨범 제목 역시 『Good ’n’ Cheap』, 즉 ‘좋고 싼 것’이다.

 

이렇게 유머러스하고 가벼운 이름과 달리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에서는 미국 시골길과 작은 술집, 먼지 나는 도로를 떠올리게 하는 투박한 컨트리 록의 맛이 난다. 지나치게 매끈하게 다듬어진 음악이라기보다 조금은 거칠고, 소박하고, 생활의 냄새가 묻어 있는 음악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력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반전이 있다.

 

그룹의 중심 멤버 두 사람은 미국 시골이 아니라 뉴욕 출신이었다. 뉴욕에서 멤버를 모은 이들은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앨범 녹음을 진행했고, 런던의 한 펍에서 상주 밴드로 활동했다. 이어 미국 대사관의 후원으로 영국 대학들을 순회하며 공연했다. 이 시기의 활동은 훗날 에그스 오버 이지를 설명할 때 매우 중요한 대목이 된다. 

영국 ‘펍 록’의 씨앗이 되다 

1970년대 초 영국 록 음악은 점차 거대해지고 있었다. 대형 공연장과 화려한 무대, 복잡한 연주와 긴 곡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가운데 작은 펍에서 관객과 가까이 앉아 단순하고 직접적인 로큰롤과 컨트리 음악을 들려주던 밴드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음악 흐름이 이후 이른바 ‘펍 록(Pub Rock)’이라는 하나의 움직임으로 발전한다.

 

에그스 오버 이지는 런던 펍에서 펼친 공연 활동으로 이 펍 록 운동의 선구적 밴드 가운데 하나로 불리게 된다. 거대한 무대보다 술 한잔을 앞에 놓은 작은 공간에서 음악을 즐기는 방식, 화려한 연주보다 노래와 리듬 자체에 집중하는 방식은 이후 영국의 새로운 록 음악 흐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1971년 11월 공연을 마지막으로 약 2년에 걸친 영국 활동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왔고, 1973년에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이후 미국의 대표적인 컨트리 록 밴드 이글스(Eagles)의 투어를 지원하기도 했다. 

‘좋고 싼’ 음악 속에 담긴 미국의 냄새 

오늘 소개하는 『Good ’n’ Cheap』은 에그스 오버 이지의 음악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반 가운데 하나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세련되고 완벽하게 정돈된 스튜디오 음악보다는 작은 바에서 바로 앞의 연주자를 바라보며 듣는 것 같은 생생함이 먼저 다가온다. 컨트리와 록, 리듬앤드블루스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 보컬과 기타에서는 투박하지만 친근한 질감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가공되지 않은 미국 컨트리 록’이다.

 

이 음반을 두고 ‘텁텁하고 깔깔한 맛’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초기 이글스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으며, 1970년대 초 미국 서부의 컨트리 록이 발전해가는 과정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음반의 제목처럼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당시 록 음악의 변화가 들어 있고, 이후 미국과 영국의 대중음악에 영향을 미친 작은 역사의 흔적도 담겨 있다. 

호퍼의 고독과 에그스 오버 이지의 유머 

이 음반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커버다.

그룹 “Eggs Over Easy” (계란반숙) 1972년 앨범 “Good ‘n’ Cheap” (좋고, 싼거) 커버 앞면

호퍼의 〈Nighthawks〉가 보여주는 세계는 고독하다.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단절돼 있고, 화려하게 빛나는 식당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도시의 밤은 조용하며 사람들은 자기만의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런데 에그스 오버 이지는 그 무거운 장면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비튼다.

그룹 “Eggs Over Easy” (계란반숙) 1972년 앨범 “Good ‘n’ Cheap” (좋고, 싼거)사진 커버 뒷면

‘계란반숙’이라는 밴드 이름과 ‘좋고 싼 것’이라는 앨범 제목이 호퍼의 진지하고 쓸쓸한 도시 풍경과 만나면서 묘한 유머가 생긴다. 한쪽은 현대인의 고독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술집에서 흘러나올 법한 투박하고 즐거운 컨트리 록을 들려준다.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인데, 음반 커버 위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 어쩌면 그것은 호퍼의 그림에도, 에그스 오버 이지의 음악에도 공통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호퍼는 거창한 역사적 사건보다 식당과 거리, 호텔과 방 안의 사람을 그렸다. 에그스 오버 이지 역시 거대한 철학이나 화려한 음악적 기교보다는 술집에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소박한 노래를 연주했다. 하나는 붓으로 미국인의 일상을 그렸고, 다른 하나는 기타와 목소리로 미국인의 생활을 노래했다. 

눈으로 먼저 만나고, 음악으로 다시 보는 한 장의 음반 

LP 시대의 음반은 음악만 담는 물건이 아니었다.

 

30cm 남짓한 정사각형의 커버는 하나의 작은 미술관이었고, 때로는 유명한 회화 작품이 새로운 대중문화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는 공간이었다.

 

에그스 오버 이지의 『Good ’n’ Cheap』이 흥미로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1942년 작품 〈Nighthawks〉가 30년 뒤인 1972년 한 컨트리 록 밴드의 음반 커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 반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는 이 음반을 통해 호퍼의 그림을 다시 바라보고 1970년대 초 컨트리 록과 영국 펍 록의 역사를 다시 듣는다.

 

좋은 음반 커버는 음악을 듣기 전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Good ’n’ Cheap』은 그런 음반이다.

 

처음에는 호퍼의 그림 때문에 눈길이 가지만, 음반을 들여다보면 에그스 오버 이지라는 독특한 밴드를 만나게 되고,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1970년대 런던의 작은 펍과 미국 컨트리 록의 풍경에 도착한다.

 

미술에서 음악으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다시 한 장의 LP로 돌아오는 여행.

그것이 오늘 ‘눈으로 즐기며 듣는 이 한장의 음반’에서 『Good ’n’ Cheap』을 꺼내 듣는 이유다.

 

글 ㅣ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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