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음반을 손에 들었을 때, 음악보다 먼저 마음을 흔드는 것은 표지의 그림일 때가 있다. 

 

영국 록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가 2008년 발표한 네 번째 정규음반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가 그렇다. 연기와 먼지가 뒤섞인 거리, 쓰러진 사람들, 그 위로 삼색기를 높이 든 여성의 모습이 눈길을 붙든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VIVA LA VIDA’라는 흰 글씨는 오래된 명화에 새로운 시대의 목소리를 덧입힌다.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앨범 커버 원작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음반 표지의 원작은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19세기의 혁명과 21세기의 록 음악은 이 한 장의 표지에서 만난다. 그림 속 인물들이 앞으로 나아가듯, 콜드플레이 역시 이 음반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였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이해하는 열쇠는 색채와 움직임이다. 화면을 안정적으로 정돈하기보다 감정이 부딪치는 순간을 붙잡고, 인물의 자세와 빛의 흐름으로 사건의 긴장을 전한다. 그의 작품에서 색은 사물을 구분하는 수단을 넘어 두려움과 열망, 비극과 생명력을 드러내는 언어가 된다.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작품 자화상 (1837)

1798년 프랑스 샤랑통생모리스에서 태어난 들라크루아는 피에르 나르시스 게랭의 화실에서 수학했다. 그러나 그의 회화는 고전적 규범을 익히는 데 머물지 않았다. 루벤스와 베네치아 거장들의 풍부한 색채, 테오도르 제리코의 격렬한 인간 표현은 그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 중요한 자극이 됐다.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작품 단테의 배 (1822)

1822년 살롱에 출품한 〈단테의 배〉는 그 출발을 보여준다. 단테의 문학에서 가져온 장면에는 거친 물결과 뒤엉킨 육체, 공포에 잠긴 표정이 가득하다. 문학 속 이야기는 화가의 붓을 거치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처럼 다가온다. 화면의 불안정한 움직임은 관람자의 시선마저 흔든다.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작품 키오스섬의 학살 (1824)

1824년의 〈키오스섬의 학살〉에서는 전쟁에 짓눌린 인간의 고통이 전면에 놓인다. 승리자의 영광보다 희생자의 무력함과 절망을 바라보게 하는 그림이다.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가 아름다운 감상에 그치지 않고, 역사 속 인간의 상처를 응시하는 회화였음을 느끼게 한다.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작품 파가니니 초상화 (1832)

그의 관심은 문학과 역사뿐 아니라 음악으로도 향했다. 〈파가니니 초상화〉를 보면 연주자의 몸짓과 악기를 둘러싼 긴장 속에서 소리의 움직임을 상상하게 된다. 활이 현을 스치는 순간의 예민함이 붓질과 만나는 듯하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음반과 함께 감상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콜드플레이가 표지로 선택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830년 파리의 7월혁명을 다룬 작품이다. 흔히 1789년 프랑스혁명과 혼동되지만, 그림의 배경은 샤를 10세의 통치에 맞서 시민들이 봉기한 1830년 7월의 거리다.

 

화면 중앙의 여성은 자유를 의인화한 존재다. 한 손에는 삼색기를, 다른 손에는 총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넘어선다. 그 주위에는 서로 다른 옷차림과 무기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자유를 향한 움직임이 특정 계층의 행동을 넘어 여러 사람의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그림은 승리의 환희만을 말하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발밑에는 죽음이 놓여 있다. 높은 깃발과 낮게 쓰러진 육체, 희망과 참상이 한 화면 안에서 맞부딪친다. 자유의 장엄함은 바로 그 희생의 무게 때문에 더욱 절실해진다.

콜드플레이(Coldplay)2008년 앨범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이 지점에서 그림과 음반의 제목이 겹쳐진다. ‘Viva La Vida’는 스페인어로 ‘삶이여 만세’라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에 ‘Death and All His Friends’가 이어지면서, 음반은 삶의 환희와 죽음의 그림자를 나란히 놓는다. 표지 속 전진과 희생을 떠올리며 음악을 들으면, 제목의 두 얼굴도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콜드플레이는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와 피아노, 조니 버클랜드의 기타, 가이 베리맨의 베이스, 윌 챔피언의 드럼이 어우러지는 밴드다. 데뷔음반 《Parachutes》(2000)의 ‘Yellow’로 널리 알려졌으며, 《A Rush of Blood to the Head》(2002)와 《X&Y》(2005)를 거치며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넓혀갔다.

 

이들의 음악에는 개인적인 고백을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바꾸는 힘이 있다. 조용히 시작한 선율이 차츰 커지고, 반복되는 가락이 청중의 목소리를 불러낸다. 외로움과 불안, 사랑과 상실은 그렇게 공연장을 채우는 공동의 감정이 된다.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는 그 힘에 새로운 음향과 구성을 더한 작품이다. 밴드는 브라이언 이노와 마커스 드래브스 등과 작업하며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는 실험을 이어갔다. 콜드플레이의 공식 소개문 역시 이 음반을 밴드의 예술적 도약으로 설명한다.

표제곡 ‘Viva La Vida’는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들려준다. 반복되는 현악기 선율과 힘차게 걸어가는 듯한 리듬 위로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가 흐른다. 음악은 밝고 장엄하게 고조되지만, 노랫말의 화자는 권력을 잃은 뒤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인물이 몰락을 회상하는 것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다시 보면 흥미로운 시선의 이동이 생긴다. 그림은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전진을 보여주고, 노래는 권좌에서 내려온 인물의 기억을 들려준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바라본 두 장면 사이로 권력의 덧없음과 역사의 변화가 떠오른다.

‘Violet Hill’에서는 한층 거칠고 묵직한 기타 소리가 귀를 붙든다. ‘Viva La Vida’의 현악기가 넓은 광장으로 울려 퍼지는 듯하다면, 이 곡의 음향은 차갑고 긴장된 풍경을 그린다. 음반은 한 가지 정서에 머무르지 않고 밝음과 어둠, 부드러움과 거친 질감을 오간다.

 

이러한 대비는 들라크루아의 회화를 감상할 때의 경험과도 닮아 있다. 멀리서 보면 장엄한 구도가 먼저 다가오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개별 인물의 고통과 표정이 보인다. 콜드플레이의 음악 역시 크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 안에 불안과 상실의 감정을 품고 있다.

 

이 음반은 2009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앨범상을 받았으며, ‘Viva La Vida’는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감상자로서 오래 붙잡게 되는 것은 수상의 기록보다 음악이 남기는 질문이다. 삶을 찬미하는 노래는 왜 몰락을 이야기하는가. 자유를 그린 그림에는 왜 죽음이 함께 놓여 있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작품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1840)

그 질문 앞에서 그림과 음악은 서로를 깊게 만든다. 들라크루아의 화폭은 삶이 역사 속에서 치러온 대가를 보여주고, 콜드플레이의 노래는 그 불안정한 삶을 다시 목소리로 끌어올린다. ‘삶이여 만세’라는 말은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의 환호를 넘어, 상실을 경험한 뒤에도 삶을 붙드는 외침으로 들린다.

 

음반을 들으며 표지를 다시 바라본다. 오래된 그림 속 깃발은 여전히 높이 들려 있고, 사람들은 연기 속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 장면 위로 콜드플레이의 선율이 흐른다. 한 장의 음반이 회화를 다시 보게 하고, 한 점의 그림이 음악을 더 오래 듣게 한다.

글 ㅣ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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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우 칼럼니스트 jaewooart@naver.com